가을에, 가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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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가을로
  • 광주전남일보
  • 승인 2017.10.2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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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관 前 여수삼일중학교 교사

가을의 정취를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양하게 다가올 것이다. 어떤 이는 수줍은 소녀처럼 흐느끼듯 나불거리는 코스모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낄 것이고, 어떤 이는 긴 여름날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의 수고로움도 감수하면서 소담스레 꽃 피운 노오란 국화꽃을 보면서도 느낄 것이다. 또한 떨어지는 오동 한 잎의 팔랑거림을 보면서 멀리 떠나 가버린 사랑하는 이로부터 가을의 편지를 받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어디 그것뿐이랴! 길가 밭두렁 한켠에 모대기로 피어나는 억새의 모습을 보라! 윤기 나는 자신의 얼굴을 뽐내는데 그 자태가 흡사 고고한 학의 모습을 연상케 하며 초장 가을의 정취를 한결 품격 있게 연출해 주며 자리한다. 각양각색의 단풍들은 가을에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볼거리이지만 가장 한국적인 가을의 정서는 어디에서 찾아볼까

추석연휴, 여수 발 용산 행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다가 만경평야를 만났다. 그것도 해질녘의 애잔한 가을 햇살이 아직은 살아서 꿈틀대고 있는 하루의 마지막 순간에 말이다. 그것은 황홀이었다. 또한 행운이었다. 햇살이 마지막으로 뿜어내는 붉은 기운을 마다 않고 송두리 째로 받아들인 나락들의 땟깔은 찬란하다 못해 숭고함마저 깃든다. 그냥 금이 아니고 황금이다. 넓다랗게 펼쳐져있는 들녘에 온통 원앙금침을 깔아 놓은 듯 이어지는 광경은 과히 감탄사를 절로 불러일으키며 상상 속에서 하루 밤을 묵어가도록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광경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가을의 정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유년의 배고팠던 시절에 벼메뚜기를 잡아 영양식이라고 볶아먹었던 기억도 떠오르고 “쌀밥만 먹고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앙탈을 부렸던 철부지적 기억도 떠오른다. 모든 물가의 기준이 쌀로써 환산되었던 그 귀한 쌀의 존재가 이제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참새들조차도 외면해 버린 쌀의 떨어진 위상을 접하면서 씁쓸함과 함께 세상사(世上事)는 역시 ‘돌고 돈다’는 말이 실감 나기도 한다.

아무튼 한국적 가을 정취의 제 1경이자 백미인 황금빛 들녘의 운치가 우리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농사짓는 사람들의 땀방울에 경의와 존경의 눈빛을 보내 드려야 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가을은 사람들을 사색의 마당으로 끌어 들이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평상시에는 일에 쫓겨 정신없이 살다가도 가을이 되면 왠지 모르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고 또 무언가를 기다리게 하는 감정이 일어나곤 한다. ‘ 아! 가을은 탄다.’라고 읊조렸던 40대경의 열정이 지금은 어디 메에 있기는 하는 걸까? 한번쯤은 찾아보고 넘어갈 일이다.

일생을 통 털어 100번도 채 맞이하지 못할 풍요롭고 상큼한 이 가을에 원앙금침 깔아 놓은 농부들의 정성에 감사할 줄 알며, 비바람 온갖 풍상을 감내하며 피어난 국화꽃의 인내에도 감동할 줄 알며, 지천의 들판에 맛난 과실을 익게 만들어 준 자연의 섭리에 순종할 줄 알게 만들어준 가을로 오롯이 빠져들고 싶다. 그리곤 ‘좋은 시절, 좋은 생각, 좋은 삶’이라는 마음을 맑은 가을 하늘에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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