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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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미투
  • 박미선 기자
  • 승인 2018.08.10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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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영필∥철학박사 ·교육칼럼니스트.

오래된 소문이다. 학교에서 흘러나오는 ‘미투’ 이야기는 많다. 여고 홈컴인데이 30주년 행사 때 “그 선생님이 나오면 나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말은 흔히 들었던 이야기다. 그 시절 여학생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숱하게 저질러진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까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런 성희롱 성폭행은 알면서도 쉬쉬하고 사건이 터지면 조용히 덮는 게 서로에게 미덕(?)이었다.

피해 여학생에게는 죽을 때까지 상처이고 왜곡인데 말이다. 어제는 9시 뉴스에 대서특필이었다. 180여명이 피해를 입었고, 가해자만 10여명이라는 한 여고의 성희롱사건. 내용을 떠나 교육계에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교사인 나는 깊은 자괴감이 든다. 작년부터 일어난 미투문제가 교육계에서는 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과연 그 학교만 해당될까? 크고 작고, 알려졌느냐 아니냐의 차이일뿐. 사실, 학교 미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의 성교육은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누구나 성적 표현 앞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표현의 존중이 이뤄지는 성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을까, 성적 표현의 경계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생뚱맞게도 얼마전 EBS다큐 프라임이 떠오른다. 남과 여의 성적 표현을 둘러싼 격차는 많이 다르다. 현실 속에서 바로 잡혀야 할 문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심스럽지만 EBS 다큐프라임 남과 여 1부, 2부를 보면 도움이 될까? “끌림, 무의식의 유혹”, 그리고 “사랑의 동상이몽”을 보면 남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착각을 많이 하는 게 남자다. 전혀 모른 남녀를 한 방에 있게 하면 남자는 훨씬 상대 여자를 의식하고 긴장한다. 여자는 상대적으로 덜하는 데 말이다. 맞다. 나이를 떠나 그런 속성을 가진 존재가 남자다. 따라서 여학교에 근무할 때 자기 스스로 도덕적 품결을 높이 관리하지 않으면 사건을 쉽게 일으키고 말 것이다. 성적 갑질로 숱하게 일어날 수 있는 학교에서 남교사와 여학생의 잡음쯤으로 착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학생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일이 있고 없고를 떠나 정말 조심해야 할 쪽은 남교사들이다. 남교사들의 신중한 언행, 처신, 그리고 착각하기 쉬운 아이들의 선망, 기대, 좋아함이 뒤섞여 혼란스런 상황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속성이 그렇더라도 교사의 역할은 성장기의 여학생에게 절대적 책임을 짊어진 교육적 관계다. 교사에게 유리하도록 기울어진 학교 성모랄이기에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따라서 여고에 근무하는 교장교감은 미리 예측하고 미리 예상했어야 한다.

여학생들을 상대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오래된 기억이다. 학년부장을 맡을 때 상담을 위해 적당한 공간이 없어 교감실을 사용하게 됐다. “문을 열고 상담하세요.” 학생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나와 상담하는 것조차 공개하기 어려운 데 ‘문을 열라’고 관리자는 권했다. 듣는 나는 기분 나빴지만 관리자 입장에선 한번쯤은 언급할 수 있는 말이다. EBS다큐프라임에서 말하는 밀폐된 공간에서 남녀의 문제는 더 미묘하게 긴장된 상황을 만든다. 어느 검사가 피의자를 성폭행한 사건도 마찬가지 맥락이었을 거라 추측한다.

EBS다큐프라임의 내용에 의하면 위험천만하게도 남성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상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따라서 학교에서 남교사들은 상황을 떠나 감정적 태도를 잘 갖춰야 한다. 남여가 갖는 차이의 태도로부터 얼마든지 서로 착각할 수 있다. 거기다가 여학생들은 고립되어 개인적으로 미투를 당할 땐 구별하지 못하고 인지력이 둔감할 수 있다. 학생은 그 감정, 그 상황을 읽지 못한 채 인간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교사의 태도가 중요하다. 책상을 두개 포개거나 눈물을 흘리는 아이 앞에 극도의 냉정함을 지켜야 한다.

아이들은 순수한 감정을 드러낼 뿐 성적 감정은 없다. 착각하지 않아야 할 대목이다. 이번 사건으로 2차 가해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피해라는 둔감의 벽이 허물어져 안으로 굳어질 트라우마가 해소되어 다행이다. 하지만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학교를 시끄럽게 했다고 비난하면 그것이 2차 가해다. 이번을 계기로 성적으로 기분 나쁠 자잘한 표현에 익숙한 교사들은 각성해야 한다. 그것은 그릇된 스승의 모습이다. 언제든지 듣는 사람이 기분나빠질 수 있을 때 누군가에 의해 반발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야 한다.

학교는 항상 사건화으로 얼마든지 노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아니다.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잠재적 사회 문제이다. 그래서 교육계의 역할은 더 신중해야 한다. 현장의 학교 관리자의 마인드가 중요하고 상급기관의 관리와 지원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해 법조계의 미투가 일어날 때 예측된 역할을 미리 했어야 했다. 분명한 것은 이 미투사건은 한 학교의 문제로 국한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어느 학교에서 가능한 일이다. 여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까지 더 적극적인 성교육과 성윤리가 세워질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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