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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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비
  • 광주전남일보
  • 승인 2018.11.1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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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흥 미력초 교장.

하늬바람에 날아오른 수만의 노랑나비떼 같은 은행잎이 장관을 이룬다. 땅으로 헤딩하는 저 은행잎들은 한동안 가을 허공을 향해 나름대로의 열정을 노랗게 물들였다. 그들이 몸 안에 지니고 있었던 노란 색소를 밖으로 토해내지 못한 여름엔 그저 보통의 녹음만 지닌 평범한 이파리에 지나지 않았다. 청춘의 푸르름을 간직한 채 한 여름의 소나기와 무더운 햇빛을 받아 내면서 실은 여름 내내 익어갔다. 여름의 햇빛 없이 가을의 단풍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떼 지어 날다 힘에 부친 듯, 창공을 향해 그들이 뻗어내었던 미소와 젊음의 향기, 지면을 사랑하거나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을 사랑하였거나, 이제 그들은 나름대로 생을 정리하고 있다.생각에 골똘한 듯, 꽁지를 위로 향해 하늘을 동경하는 자세로, 혹은 땅에 납작 누웠거나, 갖은 자세를 보이며 떼를 이루고 있다. 저들이 결코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하늘을 밝히고 땅을 거룩하게 하려는 운명의 손짓인지도 모른다.

주저앉은 장소에 따라 그들은 갖은 형태로 변형을 이룬다. 인적이 드문 잔디밭에 주저앉은 잎은 폭삭한 양탄자의 느낌으로 모로 서있기도 하고, 잔디의 탄력을 이용해 솜털처럼 허공에 떠 있어서 보기에도 경쾌한 발걸음을 걷고 있다. 찻길에 떨어진 잎은 필시 길을 따라 먼 곳을 향한 발걸음을 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길의 흐름에 합류하기는커녕 몇 발자국도 걷지 못한 채 달리는 자동차의 발길에 채여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으니 로드킬의 운명처럼 마감을 한 것만 같아서 아쉬움이 크겠다.

어디 그 뿐인가, 운 좋게도 제 몸통 아래 낙하한 잎들은 맨흙바닥을 핥으며 껴안으면서 노란 나비 떼 본연의 모습을 한없이 간직하고 포근하게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다. 주변의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 주며 조금씩 시들어가는 그들에게 최후를 약속하고 있다. 그래도 주류의 물결에 합류하였다는 안도감에 곁을 내어 주고, 어깨를 내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안락한 쉼표를 마련하였다는 표정이다. 여기서는 풍요와 나눔의 열기가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아낌없는 하나가 되어 저물어가는 가을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과녁을 잘 조준하였다고 할까? 힘 있다고 외롭게 날아가서는 운동장 멀리 떨어져서 존재감 없이 사라져버리는 외톨이보다는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그들은 지금 사선의 경계에서 마지막 안착지가 어디가 될지에 대해 많은 궁리를 했는지도 모른다. 주류에서도 중심에 있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잎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쏠리고 바닥을 굴러다닌다. 그래도 주류의 중심에서 멀지 않으니 함께 라는 사실에 행복감은 그리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바람의 힘을 받아 운 좋게도 굴러간 곳이 주류가 쌓여 있는 중심으로 몸을 포개는 이파리도 있으니 이는 생의 대박일게다. 또는 탱자 울타리에 떨어져서 탱자 수의를 걸치고 박제로 굳어가는 이파리들도 아주 많다. 그 중에 가장 안타까운 잎 하나는 하필 탱자 가시에 걸려 꼼짝달싹도 못하고 꼬챙이처럼 몸이 꿰어진 것이다. 몸의 중앙을 여지없이 관통하는 가시에 찔려 신음하고 있는 이파리라니 참 인간 세상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이들에게 햇살은 더 따가운 비수가 될 것이다. 시시각각 옥죄어오는 압박감이 피를 말리고 몸 안의 수분을 빼어내는 극약이 되어 며칠이 되지 않아 그만 아사될 것이 뻔하다. 이들을 일일이 빼어서 주류의 물결에 포개어 주자 고맙다는 듯 꽁지를 흔든다. 바스락거리는 웅성거림이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그들은 고요한 평온의 땅에 외부인의 침입을 경계하려는 듯 바동거리고 파닥거린다. 생의 최후에 대하여 주저리주저리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졌는가 보다.

그러나 어쩌랴, 결국엔 날개를 접고 말 것을, 뿌리가 뽑아 올린 그 길, 햇살을 투영시킨 그 길을 찾아 지상에서의 고별을 기약하는 그들의 한 생애가 지금 노을의 기억 속에 사라지고 있다. 비바람에 목울대가 파래지도록 온 힘을 다해 매달렸던 나뭇가지에 밤이면 은하수 별빛 모아 만들어진 노란 나비의 환영(幻影)들, 저 가을 나비 떼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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